2026.

유주희의 도의추상, 비움의 궤적이 그린 생명의 강

김윤섭 (예술나눔 공익재단 아이프칠드런 이사장, 미술사 박사)

예술가에게 화면은 자신을 투사하는 거울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유주희의 화면 앞에 서면 우리는 기교나 장식 너머의 거대한 기세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그려진 이미지’가 아니라, 작가가 온몸으로 밀어내고 긁어낸 ‘행위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주희의 작업을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열쇠로 ‘도의추상(道意抽象)’이란 개념을 들 수 있겠다. 인간만의 힘으로 상상하고 나아가는 길, 즉 ‘생각의 강’이 탄생하는 숭고한 순간이 바로 유주희의 화폭 위에 펼쳐지고 있다.


1. 스퀴지, 붓을 버리고 얻은 신체의 호흡
유주희 작가는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로 붓 대신 스퀴지(Squeegee)를 선택했다. 이는 전통적인 회화의 문법인 ‘재현’으로부터 완전히 탈피하겠다는 선언과도 마찬가지다. 현대 미학자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세계는 화가의 신체를 빌려 그려진다”라고 했다.

유 작가에게 스퀴지는 손의 연장이자 몸의 일부이며, 캔버스라는 물리적 대지와 직접 충돌하여 에너지를 전이시키는 매개체다. 스퀴지는 물감의 농도나 작가의 호흡, 손끝에 실리는 강약에 따라 캔버스 위에서 물감을 응집시키거나 확산시키며 독특한 패턴을 만들어 낸다. 이 과정은 결코 부드럽거나 감상적이지 않다. 오히려 흑백의 강한 대비(Contrast)를 통해 시각적 타격감을 선사하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작가가 쏟아부은 육체적 에너지를 실감하게 한다. 이러한 ‘몸의 언어’는 캔버스를 단순한 평면이 아닌 역동적인 지각의 장으로 변모시키며, 보는 이로 하여금 작가의 근원적인 생동감을 전율처럼 느끼게 만든다.

“나의 작업은 처음부터 리듬을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물감을 스퀴지로 밀어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비와 밀도가 자연스럽게 리듬이 되었고, 그것이 나의 글쓰기가 되었다.”

유 작가에게 스퀴지질은 단순한 채색이 아니라 ‘흔적을 남기는 행위’다. 시기별 여러 시리즈에서 보여주는 파편화된 흔적들은 작가의 전신이 투사된 궤적이며, 이는 곧 작가의 숨결이 박제된 시간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2. 안트라퀴논 블루, 심연에서 길어 올린 기억의 색
유주희의 작품 세계를 지배하는 또 하나의 축은 ‘안트라퀴논 블루(Anthraquinone Blue)’라는 고유한 색채다. 이 색은 작가에게 단순한 시각적 요소를 넘어 정체성의 근간을 이룬다. 중학교 시절 섬진강변 소나무 숲에서 사생을 하며 보았던 그 깊고 푸른 물결, 그때 느꼈던 평온함과 희망의 기억이 이 색채 속에 응축되어 있다. 철학자 가스톤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가 “푸른색은 깊이를 만들어 내는 색”이라 통찰했듯, 유 작가의 블루는 수평적 풍경을 넘어 존재의 수직적 심연을 파고드는 힘을 지닌다.

“청색은 섬진강의 푸른 물결, 어린 시절의 추억 등 내 존재를 가장 잘 드러내는 색이다.
나에게 이 색은 정서적 풍경이자 사유의 흔적을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안트라퀴논 블루는 중첩될수록 그 진가를 드러낸다. 엷게 칠해졌을 때는 은은한 온기를 머금은 빛이 되지만, 여러 번 겹쳐 쌓이면 섬진강의 도도한 흐름처럼 깊고 어두운 암연(黯然)의 세계를 형성한다. 작가는 이 푸른빛의 층위를 통해 시간의 퇴적을 시각화하며, 찰나의 개인적 기억을 영속적인 예술적 사유의 영역으로 승화시킨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대작들에서 우리는 이 푸른빛이 만드는 층위를 통해 시각적 깊이를 넘어선 영혼의 울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로써 주관적인 기억에서 출발했으나, 결국 우리 모두의 근원적 노스텔지어를 건드리는 보편적인 감상의 창구가 되어준다.


3. 반복과 비움, ‘도의(道意)’에 이르는 수행적 노동
많은 이들이 유주희의 작품을 처음 접하고 남성 작가의 것이라 짐작하곤 한다. 화면을 압도하는 흑백의 대비와 거대한 물성, 대작들을 헌신적으로 채워 나가는 열정적이고 굳건한 에너지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삶을 사랑하고 매일의 성실한 육체적 노동을 기꺼이 감내하는 여성 작가로서의 강인한 롤모델이 존재한다.
유주희의 작업은 무의미해 보이는 행위를 끝없이 반복하는 장(場)이다. 때로는 지루하고 답답한 과정일 수 있으나, 작가는 이 반복 속에서 자신을 비워낸다. 이는 ‘그리는 자’와 ‘그려지는 것’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과정이며, 현대미술이 추구하는 수행적 미학의 정수와 맞닿아 있다. 이 반복은 동양적 철학 사상이 내재한 사유의 방법이며, 자아를 내려놓고 사물의 본질과 합일되는 ‘무아(無我)’의 경지로 나아가는 수행이다.

“작업은 끊임없이 나를 비워내는 과정이다.
반복적 행위 속에 가시화된 패턴은 그저 흔적으로 남을 뿐이며, 그 흔적들이 모여 나의 정서적 몰입과 존재감을 증명한다.”

그래서 유주희의 그림은 ‘무엇을 그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비워낼 것인가’에 대한 응답이다. 비워낸 자리에 자연스럽게 고여 드는 사유의 강, 그것이 바로 ‘도의추상(道意抽象)’의 실체다.
결국 유주희 작가의 작품은 눈으로 응시하는 대상이 아니라, 온몸의 감각으로 느끼고 마음의 결로 읽어내야 하는 존재다. 캔버스라는 광활한 대지 위에 스퀴지로 일궈낸 그 ‘생각의 강’을 따라 걷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작가가 도달한 고요한 명상의 시간 앞에 서게 된다. 그곳은 안트라퀴논 블루의 심연이 품은 평온한 기억과, 육체의 호흡이 빚어낸 역동적인 리듬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이번 개인전은 유주희라는 한 예술가가 쏟아낸 헌신적인 노동이 어떻게 보편적인 질서로 승화되는지를 목격하는 경이로운 여정이 될 것이다. 작가가 긁어낸 비움의 궤적 끝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가득 차오르는 생명의 숭고한 에너지를 목격하게 된다. 또한 유주희 작가의 독보적인 조형 언어를 정립하고, 한국 현대미술 추상의 새로운 지평을 확인하는 쉼 없는 현재진행형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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